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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사회

(느림보 학교) 국어공부, 패러다임을 바꿔라 (강연 후기)

느림보학교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손동빈(신도림중) 선생님의 유쾌한 사회로 이기정(서울도시과학기술고) 선생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50여분이 넘는 분이 오셨는데요, 이번 두 번째 강연에는 30여분만 오셨네요, 아마도 5 25일 너무도 뜨거운 날씨에 잠시 숨을 고르고 계신 듯 합니다. (다음달에는 다들 뵐 수 있기를……)

 

이기정 선생님 참 잘생기셨습니다. 이선생님은 DJ정부 때 학원에서 학교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서울 교육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교육청 앞에서 학교로 돌아오기 위해서 단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제 페친(페이스 북 친구)조연희 선생님도 학교로 돌아오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정말 내년 지방 및 교육감 선거가 중요하다는 생각)

 

이기정 선생님은 지금까지 명저(학교 개조론, 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 국어공부 패러다임을 바꿔라 등)를 저술하셨고, 저술 과정에서 니체의 고뇌를 이해하는 경지에 다다르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ㅋㅋ

 

1. 인생은 영어가 결정하고 입시(대학입학)은 수학이 결정한다.

학원가의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쏙 되었습니다.)

논술>수능>학교 시험(중요도)는 바람 직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시험은 학력고사(주입식교육)와 가장 유사한 형태이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학교 공부는 논술시험에는 도움이 안됩니다. 때문에 학교선생님들은 수업자체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쓰고 있고 때문에 학교 교육은 붕괴 경향성이 생긴 것입니다.

 

수학의 예를 들면 반 이상은 수업을 못 알아 듣고 또 일부는 선행으로 수업에 관심이 없고 따라서 공교육은 좌절과 절망을 가져옵니다. (핀란드 같은 수준별 수업은 학생의 수준에 따라 쉬운 수학을 배우는 학생은 교제도 쉬운 교제, 시험도 쉬운 시험을 보지만 한국의 수준별 분반 수업은 상//하로 학생의 수준만 나누어(분반) 놓고 같은 교제로 같은(상위권에 쉬운, 하위권에는 어려운) 문제로 시험을 보고, 평가를 하는데 이것이 무슨 수준별 수업이냐고)

 

수학, 과학, 사회>영어>국어 상대적으로 학교수업에 충실 시 수능(논술)에 도움을 주는 중요도 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 수업은 창의력이 아닌 무기력을 기르는 시간(위 수학 수업의 예 참조)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국어 시간 또한 국어적 능력을 향상 시켜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기, 읽기, 능력의 향상 즉 지식이 아닌 능력의 습득이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수능 국어(언어 능력)은 사실상 읽기 능력만을 측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계 논술 시험의 경우 읽기 능력 + 쓰기 능력 + 폭넓은 교양을 평가해야 하는데 학력고사 페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2. 객관식 문제 풀이에 과도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

현재 학교 국어 시간은 선생님들이 교과서의 글을 분석하고 해설하는데 과도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국어적 능력 향상과 관계도 없습니다.

 

문제 풀이 교육은 고등학교 때 시작해도 된다고 하십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초1인 큰아이를 거의 매일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인터넷평가 시험(객관식)을 보도록 했는데, 오늘 부 터 이런 시험 보는 일을 중단하려 합니다.)

 

국어수업을 예를 들면 오로지 책 읽기만 하는 수업, 오로지 책 읽기만 하는 시험공부가 교사에게도 쉬운 수업이고 마치 축구공 하나 농구공 하나 주고 아이들에게 뛰어 놀도록 하는 체육 수업이 교사에게는 쉽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수업인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즉 국어는 체육과 유사하여 오랜 세월 동안 독해/쓰기/교양이 몸에 체득되는 것으로 체력이 단기간에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를 애매모호함(광범위함)으로 설명하셨습니다.

 

3. 그런데, 입시의 딜레마

1에서 보시면 논술, 수능이 학력고사에 비해 바람직한 수업(평가방식) 임은 틀림없지만 빈부에 따른 학력격차가 심해지는 역설과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즉 바람직한 방향이나 부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란 것이지요 여기서 입시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 지식위주 입시<->능력위주 입시

- 저 차원 입시<->고차원 입시

- 획일적 입시<->다면적 입시로의 변화는 바람 직 하나

이는

- 단기간/저비용<->장기간/고비용

입시로의 변화로 예를 들면 영어문법을 평가하는 지식위주의 입시는 단기간/저비용으로 준비가 가능하나 영어말하기/영어쓰기 위주의 입시는 장기간/많은 비용이 필요한 형태로의 변화이기 때문에 교육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입니다. 즉 착한 입시 제도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핀란드와 스웨덴처럼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의 고통은 꽤 오래갈 것이다. 란 말씀에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4. 공포의 외인구단 증후군 극복해야

공부는 힘들게 많이 해야 가 공포의 외인구단 증후군 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하루 스케이팅 훈련시간은 3시간 30, 준비운동 및 정리시간 1시간 30분을 포함해도 하루 5시간 운동을 합니다.

 

, 졸린 눈을 세수해가며, 줄넘기 해가며 밤새워 공부하는 것 보다 충분하게 수면을 취하고 운동하며 공부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영어, 국어는 교과서가 불필요 합니다. 영어로 된 성인소설을 아이가 많이 읽는다고 해도 그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만화책을 포함한 독서는 아이들의 창의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업시간 내에 이기정 선생님의 고뇌가 전달되어 왔고, 우리 교육 현실에 이제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저로서는 답답한 현실이 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미국으로 1년간 안식년을 다녀온 사촌 형이 미국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교육적인 측면에서 체육의 경우 심 박동 체크까지 해가며 철저하게 체육수업을 하나, 지식을 배우는  다른 과목의 경우 교육의 목표가 아이들이 수업과정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수업과정이 충분하게 전달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나왔어도 학생이 다시 그 과정에 대한 이해를 했다고 재시험을 원하면 언제든지 재시험을 볼 수 있고, 향상이 되었다면, 학점도 다시 부여하는 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결국 대학에 가면 미국아이들이 (체력적으로) 훨씬 앞서가고 이는 공부의 질과 양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따라가기가 버거운 상태가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접하며, (아무리 개인적으로 콘디션이 나빠도) 한날 한시에 시험을 보고, 평가가 종료된 후에는 다시 재도전의 기회도 주지 않는 우리현실이 답답하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내신 때문에 재시험의 기회를 주려고 해도 불가능 하겠죠)

 

이기정 선생님의 말씀 중 혁신학교는 집단 줄넘기 중이다라는 말씀을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 교육은 그 교육의 관련 인인 우리 스스로가 내 아이만을 생각해 경쟁에서 이기려는 교육이 아니라 공동체와 손잡고 함께 하는 교육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이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러나 결국 고통의 끝에는 아프지만 함께 사는 교육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5. 마무리 하며

얼마 전 페이스 북에서 사진으로 본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어느 선교사가 멀리있는 나무를 먼저 돌아오는 아이들에게만 간식을 주겠다고 일종의 선착순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손을 잡고 함께 들어왔답니다. 선교사가 이상해서 힘껏 달려 먼저 도착을 했다면 더 많은 간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왜 함께 들어왔느냐고 물어보니,   아이들이 답하기를 우리 중 누군가가 저 간식을 (함께)먹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기쁘지 않다고 했다는 겁니다. (적더라도 나누어 먹는 것을 선택)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 후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습니다. 의자놀이라는 것이 의자의 개수를 줄여가며 그 의자에 앉지 못한 아이들을 탈락시키는 놀이인 것은 다들 아시죠, 그런데 어느 후기에 쌍용자동차 사태를 겪고 의자의 개수가 준 만큼 자리를 좁여 앉고 함께 앉겠다는 선택을 하겠다는, 저도 아직은 자신이 없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느림보 학교를 통해 배워 나가겠습니다.

 

함께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