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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문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쓰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쓰다'

좋은부모리더십교실 마지막 특강...노무현을 새롭게 보이게 하라

장재훈/수강생

시험공부만 하다 선생이 되니...

강길 따라 40여분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다. 과거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만든 길이었기에 경제성이 있어야만 길이 생겼다. 넓은 풀밭, 작은 소나무 그 사이로 길이 있었다. 아이들의 검은 머리가 수풀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그 모습이 예뻤다.

마을에는 용소(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사는 곳)가 있었는데 용이 승천한 세상은 없었다. 초겨울 잔물결이 얼었다. 새벽녘엔 물결이 살얼음이 되었다. 학교 가는 길에 돌멩이를 던지면 살얼음(잔물결)을 넘어가며 ‘챙...챙...챙... 챙…’ 하는 소리가 예쁘다.

개울을 넘는 징검다리, 오랜 세월 지나면서 큰물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물가 작은 돌로 시작해 점점 커지다 다시 작아진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발소리를 줄이며 따라가면 아름다운, 기승전결이 뚜렷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물소리 이야기만으로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덕지초등학교, 순창중학교, 순창농고를 나왔다. 순창농고는 논이 많아 농사 기술을 배우기보다 농사를 직접 지었다. 일만 하다 졸업했고, 고졸이지만 당시 선생님이 많이 부족할 때라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4개월 강습을 받은 후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가 가장 기뻐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교대, 사범대는 문제다. 시험공부만 하다 선생님이 된다고 하니 큰 문제다.

'할 이야기'를 계속 쓰면 글이 된다

덕지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기 전까지 교과서를 빼고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순창극장에 들어오는 모든 영화를 봤다. 처음에는 몰래 들어가던 구멍이 있었는데, 계속 몰래 보다 보니 어느 날 구멍이 막혀 있었다. 그래도 9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감시원이 사라지는 9시 20분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사람이 늙어간다. 영화를 본 뒤 할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책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가 되었다. 할 이야기를 계속 쓰면 글이 된다. 어느 순간 내가 책을 보고, 생각하고, 읽고, 시를 쓰고 있더라. 시를 10년쯤 쓰다 보니, 내 시가 시 같았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자기감동이 필요하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 남이 칭찬하지 않으면 스스로 칭찬하면 된다. 이렇게 쓴 19편을 모아 <창작과 비평>에 보냈다. 그랬더니 이시형 선생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해 10월 책 두 권이 나왔다.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21명 시인의 작품이 각각 5~9편씩 소개되었다. 그때는 시가 인쇄되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2주 뒤 등기우편으로 9만원이 원고료로 왔다. 당시 월급이 8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고민이 많다.

덕지초등학교에 5년을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1년 전근을 갔다가 다시 덕지초등학교로 돌아왔다. 여섯 번째 덕치초등학교에 근무하며 선생으로 31년, 초등학교 학생으로 6년 해서 모두 37년간 있다가 2008년 퇴직했다.

60살 세상만 배운 엄마, 120년을 살아갈 아이들

농부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어머니는 아무 것을 배우지 않았어도 바느질도 잘하고, 밥도 잘한다. 요즘 아이들은 좋은 학교 나와도 자기 이부자리 하나 정리 못한다.

요새 해석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아이들에게 정답을 알려주고 하나의 정답을 쓰게 하는 것이 아무런 생각 없는 아이들을 만든다. 왜 아이들을 깨우고, 먹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먹이려 하는가? 스스로 하게 하라. 아이들을 엄마가 망치고 있다. 우리 가정은 아이들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한 공동체일 뿐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삶이 공부다. 밭 매는 것, 윗밭에서 배우면 아랫밭에서 써먹는다.

자기 편 말고 다른 편을 끌어들여야 한다. ‘노빠’라고 스스로 말하지 말라. 부모 세대 삶의 가치는 낡았다.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100살까지 산다. 엄마 말을 듣지 말라. 120년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60살까지 사는 세상을 배운 엄마의 머릿속 기록은 참고만 해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며 싫어하는 일을 놀랍게도 30~40년을 한다. 우리 어머니는 삶에서 잘 하는 일을 평생하며 살았다. 교장, 교감을 하다 은퇴하면 시키던 사람이 시킬 사람도 없고, 시키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 공황을 맞는다. 늦고 더디고 천천히 가도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빨리 갈 수 있다. 손에 쥐면 쥐여 있는 것만 내 것이지만 손을 펴면 세상이 내 것이다.

교육은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

농부는 자연을 유심히 본다. 햇살이, 봄비가, 달빛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이를 삶의 방식으로 삼는다. 평생 공부하는 삶이 예술이다. 때문에 많은 영화에서, 또는 시인이나 화가가 농사일을 모티브로 한다.

교육은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다. 난 가르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주로 2학년을 26년간 가르쳤다. 한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부모와 아이를 모두 가르친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 아이는 부모랑 (하는 짓이) 똑같았다.

정직과 진실을 아이들에게 배웠다. 두려움과 부러움이 없어진다. 때문에 어디에도 지지 않는다.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시골 학교는 한 반에 3명의 아이들만 있다 보니 1, 2, 3등만 있다. 이것이 행복했다. 아이들이 고자질하는 것을 봐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얼마나 진지한가. 정직하고 진실하다.

신비롭기 때문에 감동을 잘한다. 감동은 느끼고 스며드는 것으로 행동과 생각을 바꾼다. 이렇게 되면 운명이 바뀐다. 본래의 공부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결혼하면 고치고 바꿔야 하는 것이 많다. 고치려면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나는 기념일, 이벤트를 모른다. 그러나 평소에 잘한다. 삶은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이고 연관성이다. 신기한 것은 똑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신비로워진다. 제일 존경하고 존중해야 할 것은 아내(나랑 가장 오래 살 사람)다. 고치고 바꿔야 할 것이 가정이다. 부부학교에서는 자퇴하고 전학 가고 싶을 때가 많다. 고치고 바꾸고 맞춰야 한다.

책을 보지 않는 ‘공포’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 다들 글쓰기 하면 시와 소설만 떠올리지만 문학은 15%도 안 된다. 그밖의 글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사람들이 안보는 것은 공포다. 정신이 썩는다. 돈 버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이길 수 없는 사람은 늘 공부하거나, 늘 글 쓰는 사람이다. 자기 일을 자세히 보는 사람은 자기 일을 잘할 사람이다. 글쓰기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문학만 글쓰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논리가 없는 아이들에게 글쓰기 가르치는 것은 힘들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무를 정해준다. 아이들이 나무를 보고 온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 있게 보면 다르게 보인다. 혁명이란 그렇게 다시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으로, 이것이 철학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개를 아는 것이 공부다. 하나를 자세히 보면 다른 것도 자세히 보는 능력이 생긴다. 이해가 되면 내 것이 되고 비로소 인격이 된다. 누군가 한 명을 밟아야 되면 절대 인성교육이 될 수 없다. 인격이란 지식을 통해 나를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것이고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다.

학교가 아픈데, 말하지 않는 선생

관계에서 갈등이 생긴다. 그러다 깨지면 힘들어진다. 요즘은 있는 집 아이들이 인격도 갖추고 있다. 놀라운 것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교육의 양극화가 극심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하는데, 학교가 아픈데 어떤 선생님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월급쟁이일 뿐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고함질러야 갈등이 조정되고 조화롭게 만드는 삶으로 변화할 수 있다.

‘조화’란 이것과 저것이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생각대로 간다.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나머지도 역할이 있다. 생각이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철학’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믿는 것이 신념이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창조하도록 하여 관심, 공감, 감동을 갖게 하여야 한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70년대는 무엇이든 새로운 시대이고, 지금은 만드는 것을 넘어 감동까지 줘야 하는 시대다. 조선시대까지는 인문학으로 과거를 보고, 시 잘하는 사람을 뽑아 나랏일을 시켰다. 시는 문과와 이과가 융합된 것이다. 이제 융합의 시대로 하나만 생각하면 안 된다. 다시 인문학이 중요한 것은 인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이다.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에 있다. 그런데 사람이 자연이라는 인식은 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 들어가면 편안해진다.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새로운 나무, 나무는 정면이 없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생명력이 있다. 좋은 그림, 훌륭한 음악은 완성되어 있으나 늘 새롭다.

이제 노무현을 새롭게 보이게 할 때다. 구태의연함은 지겨움을 준다. 차이고 나면 (이별 후에) 바다를 보는 것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며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힘을 준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 '마지막' 수업

7개월간의 설레임...셀프학점은 F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가에 산다. 가게 하나 없는 작은 시골마을 전북 임실군 덕진면 장산리가 그곳이다. 시인이 자랄 때 30가구이던 마을은 지금 10가구 남짓 남았다.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없어진, 이제는 모두 도시화된 마을에는 다문화 가족과 재중동포(조선족) 분들이 주로 남아 있다. 

이날 시인의 강의는 유쾌했다. 그의 어머니 이야기에 눈물 흘리게 만들었고, 그와 함께하는 아이들의 글과 그림에 감탄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요한 4가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 균형감각이 있는 글을 읽는다(인터뷰 기사가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 시를 이해하면 우리 사회를 가장 빠르게 느끼게 된다. 시는 이슬비처럼 나를 젖어 들게 한다.
▷ 예술적 감성을 키워야 한다.
▷ 행복한 삶(직장, 가정, 부부)을 생각해야 한다(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4월 27일 개강한 ‘좋은부모 리더십교실’은 11월 23일 김용택 시인의 강의로 끝났다. 좋은 사람들과 같은 방향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시간이었다. 수료식과 함께 스스로 F(Fail) 학점을 주었다. 기회가 되면 재수강할 생각이다. 내년에 또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