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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가족

비가 오는 날입니다.

우진이가 FC Seoul U-12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기 이전이네요, 사실 지난 주 수요일~금요일 사이에 발표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한 주 연기되었고, 우진이는 무슨 자신감인지 틀림없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희 부부도 조금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은 결과가 나쁘면 제 PC에 보관만 될 것이고, 결과가 좋으면 제 블로그에 올려질 것입니다.

 

제 어머니(우진이 할머니)는 대장암으로 어제부터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6주간 진행하시고 7주간 휴식을 가진 후 내년 1월 중순경에는 수술을 하시게 될 겁니다. 수술을 하신다고 해도 종양의 위치가 나빠서 항문을 살리기가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배에 구멍을 내고 배변 봉투를 달고 사셔야 됩니다. 그러나 방사선 치료가 잘되면 수술로 종양만 제거할 수도 있다고 하니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잘 이겨내시길 응원해주세요.

 

몇 주전 점심식사 후 회사 근처 조계사에 산책을 갔다가 대입 수험생 자녀를 둔 부장님이 국화꽃 화분에 축원문을 써서 꽂아두고 오는 것을 지켜보며, 우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신입생을 추첨으로 뽑기에 ‘좋은 초등학교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써 붙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두 학교 모두 떨어졌고, 집사람은 우스개 소리로 기독교학교(이대 부초) 입학을 조계사 가서 기원하니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부모 마음은 다 똑 같은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님도 엄청나게 추웠던 저의 대입 시험날, 시험 보던 학교의 교문 앞에서 하염없이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때의 저도 몇 년 전의 우진이도 결과만 놓고 보면 원하던 학교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당시의 제 어머니나 저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고 인연은 따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집에 가서 제일 즐거운 시간이 거실 소파에 앉아, 우진이가 토실하고 하얀 엉덩이를 내어 놓고 샤워하러 들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한참 동안 씻고 나오는 모습과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가 제일 행복해 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진이는 저에게 그리고 저희 부부에게 좋은 기운을 많이 가져다 준 아이입니다. 결혼 7년만에 시험관 아기로 어렵게 찾아와서 아빠에게는 승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복 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워보니 이 아이의 아빠란 것이 행복했습니다. 때론 저에게 과분한 아이라는 생각이 될 정도로 인성이며, 됨됨이며, 지능이며 운동신경까지 타고난 것이 많은 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로 운동을 시작하면서 취미 반에서는 최고였는데, 선수 반에 오면서 세상에 이렇게 축구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은 줄 몰랐었기에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대회를 나가면 A, B팀으로 나뉘었을 때는 B팀이었고 한 팀으로 나갈 때는 출전 시간에 관계없이 총 경기수에 반만이라도 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전력 외라고 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주전멤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피치 위에서 경기를 하지 못해도, 누구 보다 더 큰 목소리로 팀과 친구들을 응원하던 아이였습니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던 실력도 친구들과 차이를 조금씩 좁혀나갔고, 출전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수비수를 보았고, 포지션의 특성상 한번 실수만 해도 욕을 먹는 부담스러운 위치였지만 포지션이 무엇이든, 아이가 조금씩 더 뛰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만으로도 저희 가족은 좋기만 했습니다. 우진이는 자신의 역할이 수비라면 수비를 골키퍼를 하라면 골키퍼를 가끔씩 팀에 여유가 생기면 공격도 해보면서 지금까지 묵묵하게 성장해 왔습니다.

 

저희 아이 팀(FC Seoul 원팀드 야드(충암) 3학년)은 팀으로 보면 그 나이에서 아마도 전국 최강일 것입니다. 저희 집은 우진이가 최강팀의 일원인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3학년이 되자 몇몇 친구들이 당시에 주2회 운동하던 저희 팀에서 운동횟수가 더 많은 팀으로 1~2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축구 선수로의 진로에 보다 많은 관심이 있으신 부모님들께서 주2회 운동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입니다. (저 또한 그 판단에 동의합니다.) 더구나 가을이 오고 다른 프로팀에서 4학년 올라갈 아이들을 뽑기 시작하면서 이랜드로 성남FC로 몇 명의 친구가 더 옮겨갔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FC Seoul(충암)은 여전히 잘하고 있고, 적은 인원이라 우진이가 책임질 부분은 조금 더 커져 갔습니다.

 

솔직하게 축구가 개인종목이 아니고 단체 종목이라 1등, 2등, 3등 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그렇게 팀을 떠나간 친구들이 대부분 우진이보다 잘하던 친구들이라 아빠인 저는 조금씩 조금씩 혹시 FC Seoul U-12에서 3학년을 많이 뽑으면 될 수도 있겠다는 욕심이 났습니다.

 

변윤수 코치님의 주도로 운동 시간을 주 2회에서 4회로 늘려가며 우진이와 친구들은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고, 우진이는 실력이 더 탄탄해져 갔습니다. (함께 운동한 친구들은 늘 최고의 재원들이었고요)테스트 날이 되었고, 여전히 팀에 남아있는 친구들 중 7명이 1차 테스트를 보러 오산중학교에 갔습니다. 테스트는 7 대 7, 15분 경기를 두 게임 했는데, 저는 여기까지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으나 예상외로 1차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고 2차 테스트는 기존의 유스팀 훈련에 포함되어 3일 동안 진행 되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었고, 평상 시 같았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갔겠지만, 어머니의 대장암 진단 후 여러 가지 검사에 동행하느라 한번도 훈련하는 곳에 가보지 못했습니다.전해 듣기로는 우진이가 잘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저 덕담일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주로 오른쪽 수비를 봤다고 했고, 2학년부터 시작한 선수 반에서 주로 보던 위치라 큰 실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가 U-12 스카우터 분들과 코치님, 감독님 눈에 들 수준일까? 확신은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발표를 하기 전 2주 동안 전화만 와도 문자만 와도 깜작 놀랄 정도로 기대를 숨길 수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엇보다도 우진이가 차근차근 잘 성장해주었고, 변윤수 코치님 뿐만 아니라 이준호 코치님은 우진이에게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 중 실력이 늘어난 것으로만 따지면, 3손가락 안에 든 아이라며 격려해 주셨고, 공을 하나하나 계속 던져주시며 기본기를 다져 주시고, 잘 한다고 용기를 주셨던 일산서구FC의 박희선 코치님 3분 선생님의 도움과 수요일과 금요일 정시 퇴근을 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선, 다른 근무 일에는 매일 밤10시~자정이 되어야 퇴근하던 엄마의 정성과 노력, 테스트 기간인 3일 동안 조카를 위해 고3학부모인 처형이 하루 3~4시간씩 운전해가며 우진이랑 함께해준 것이 상호 작용한 결과라서 고맙기만 합니다. 이분들 모두가 어찌 보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신 분들입니다.

 

물론 이제 초등 유스가 되었다고 진짜 프로선수가 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한 계단 올라가야 하는 시점에 하늘에서 없던 계단이 생기고 한걸음 내디디면 다시 계단이 만들어 지는 듯한 이 묘한 기분을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조계사의 붉은 국화꽃 화분 위에 어머니의 쾌유를 바라는 문구를 꽂아두고, 그 옆에 아직 꽃봉오리만 있던 노란 국화꽃 화분 위에 ‘우진이는 멋진 프로가 될 거야’란 문구를 꽂아두고선 2주 만에 가보니 노란 국화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축구로는) 비록 언젠가 멈추게 될 지라도 아직 어린아이이고,지혜로운 아이이기에 활짝 필 또 다른 날이 올 것이라 믿어 봅니다. 그것만으로도 아빠는 이 아이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저도 저희 어머니에게는 그런 아들이었겠죠?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쾌유하셨으면 합니다.

 

2015.10.27 우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