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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정치

[강의후기] 이종구 화가의 ‘서양화가가 본 노무현’ 강연 후기

사실 저는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 해야 맞을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오원근변호사님 강의로 ‘노무현 시민학교’를 처음 접하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모이는 공간에 함께하겠다고 생각해, 이종구 화가님의 4월 강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종구 교수님은 처음 뵈었지만, 강렬한 눈빛과 수염 그리고 (예술가 다운) 모자가 완벽한 예술가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민중화가 이종구(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시대별로 미술의 변천사를 소개해주신 것을 정리해 보면 80년대 이전에는 서정적 풍경화에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하며, 이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의 무저항을 은연 중  교육하기 위함으로 주로 국전을 통해 발표되었다 합니다. 그러다 80년대가 되었고, 이 당시 ‘걸개 그림’ 은 권력과의 싸움이었으며 작품의 압수, 구속으로 이어지는 불이익을 많은 예술가 들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개념미술 또는 미니 멀 아트가 유행했고, 이 유행에 현실은 없었답니다.(여기서 현실이란 광주학살, 고문 등)

 

이러한 반성에서 새로운 그림 형태가 선보인 것이 바로 (목)판화로, 이는 단시간에 독재자와의 싸움의 도구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형태의 민중미술로 예술가들의 대응했던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 하고 정리했는지 혹 오류가 있다면 댓글로 바로잡아 주세요)

 

시대상황이 혹독했던 80년대는 대학에서 수업을 받기 보다는 거리에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던 상황으로 이 당시 작가들의 민중미술은 영문으로도 ‘MINJOONG ART’로 표현될 만큼 미학적 성과를 인정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연속되는 학생들의 죽음과 수 많은 의문사(38명의 죽음이 있었다고 합니다.)의 결과물로 결국 6.29선언을 이끌어 낸 후 약 3개월 만에 4천여개의 노조가 만들어지는 민주화의 과실이 있던 시절(그러나 양 김의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바라봐야 했던) 민중미술의 3대 대표작가로는 임옥상, 신학철,최병수 선생님 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하셨고요,  저는 신학철 선생님께 남강고등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받은 제자이기 때문에 그 시절로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90년 초 대학생활을 하면서 목판화 같은 강렬한 민중 미술을 많이 보기도 했고. 강의 내내 이제 40대 초반이 된 세대로써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80년대 민중 미술은 눈앞의 그림처럼 강력한 기억으로 다시금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가장 재미있던 순간은 최병수 선생님의 일화(미대 출신이 아닌 목수이셨던 분이 홍익대 다니던 친구들과 미술작업을 할 때 목공 기술이 필요하여 함께 있던 최병수 선생을 경찰이 함께 연행한 후 조사과정에서 목수라고 할 수가 없어서 예술가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공인 예술인 ㅋㅋ)를 말씀해주실 때였고,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당시 황당한 상황을 상상하니 곧 세상이 다시금 그리로 갈 것 같은 쓸쓸한 우려도 생겼습니다.

 

통일의 꽃 임수경(현 민주당 국회의원)의 방북과, 판문점을 통해 귀국한 이야기, 홍성담 화가님의 11개의 그림으로 나누어 제작된 77m 대작 작품이 한양대 노천극장에 전시 되었다가 경찰이 작품은 소각하고 홍화가님은 간첩혐의로 3년의 실형을 살게 한 이야기(대선 전 박근혜 산부인과 그림을 그린 화가분)

 

한국의 동양화(수묵화)와 비교하면 북한의 조선화에는 얼굴에 명암을 넣고 색깔 등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는 말씀까지 그림에 문외한인 저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당시의 시대상황을 녹여가며, 그림과 함께 제가 쏙쏙 이해 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강의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재미있는 강의는 예정된 시간이 훨씬 넘어 종착역인 노무현 대통령의 초상화가 만들어진 과정에 다다라 더욱 흥미진진 해졌습니다. 이 교수님은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면 사회적 약자, 평등, 개혁, 지역타파,실천 등이 떠오른다고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을 존경했고, 존경하지 않으면 초상화를 그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생가 뒤, 봉화산 이야기 중 봉화산에 쓰러진 불상 하나가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을 예언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씀에 울컥했습니다.

 

80년대를 함께했던 민중미술은 2006년 대추리 사태 때 포스트 민중미술로 변화하였고 이때 이종구 화가님도 ‘대추리 벽화 – 내 땅에 농사짓고 싶다’로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고향이신 충남 서산 오지리 마을 분들을 작품으로 표현하시면서 마을분들과 재미있었던 일화 들, 지금은 그 작품속  등장인물(부모님 세대)들이 한두분씩 돌아가시면서 이제는 교수님의 친구분 (세대)들을 그리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이 더 흘러가며 교수님 그림에 흰 공간(돌아가신 분의 자리)만 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술가는 역설적이지만 세상이 힘들 때 본능적으로 참여하여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말씀에 앞으로 (세상이 너무 힘들어 져서)도 낸시랭 이외에도 위대한 예술가 들이 계속적으로 다수 탄생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을 옮기며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캔버스 위에 농부를 그려보니 모델이지 농부의 모습이 없었는데, 양곡 포대에 농부를 그려보니 진짜 농부의 그림이 되었다”

 

제 삶이 끝나는 날 어떤 면 위에 어떤 그림으로 제 자신이 남을 수 있을 지 결국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이미 제 몸이 스스로 붓이 되어 그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추한 그림이 아니기를 소망하며 혹시 본 후기로만 이종구 교수님을 만나신 분들을 위해 이종구 교수님의 작품을 보실 수 있도록 인터넷 링크를 소개하며 강연 참여 후기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query=%EC%9D%B4%EC%A2%85%EA%B5%AC%20%ED%99%94%EB%B0%B1&nso=so%3Ar%2Ca%3Aall%2Cp%3Aall&sort=0&ie=utf8&sm=tab_nmr


2013.04.19 으뜸벗(장재훈)


4월 월례강좌 수강생과 함께 '노무현시민학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