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에 나서겠다고 하니 우리부서원들 걱정이 많다. 천천히 올라갔다가 1시가 되면, 거기가 어디든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부탁부터 여러 가지 주문들 내가 그렇게 나약한 이미지였나!
소공원에서 시작된 산행은 비선대에서 양폭 대피소까지 천불동 코스로 쉽게 올라갔다.
(양폭 대피소 앞 풍경)
천불동 계곡을 지나
(양폭대피소)
(천불동 계곡 이름모를 폭포)
천불동(千佛洞)이란 이름은 이 계곡에 그야말로 천의 부처상을 늘어놓은 것처럼 기암봉이 많고 다양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비선대 부터 무내미고개 가기 전까지 길 양옆으로 도열한 깎아지른 절벽들과 등산로 중간 중간 문수담, 귀면암, 오련폭포, 천당폭포 등의 비경이 놓여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비선대에서 오련 폭포를 지난 약 10분쯤 걸으면 오른쪽에 양폭산장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계획이 틀린 것을 알았는데 우리의 배낭에는 컵라면 4개가 있었고 더운물은 산장(대피소)에서 제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더운물은 제공되지도 판매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즐거웠다. 내 예상보다 경사가 심하지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도 않았다.
산장 맞은편으로 만경대, 고갈봉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음폭골이 협곡으로 이어진다. 산장에서 오른쪽으로 천당폭포 위로 설치된 철계단을 올라서면 희운각까지 중간에 무너미고개라는 가파른 마루턱에 올라서야 한다. 이 고개는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을 구분 짓는 곳이며 무너미란 말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희운각 대피소 이전의 헬기장)
희운각 대피소에서 간단하게 빵과 생수로 간식을 먹고 중청대피소까지 계단 오르기를 또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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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결국 다리에 쥐가 올랐다. 나도 깜짝 놀랐고 설 팀장 강 과장 차 대리도 놀랐을 것이다. 강 과장이 내 등산화를 벋기고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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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되었다. 더 이상 산행을 계속하다가 민폐를 끼치거나 사단이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래서 세 명을 먼저 보내고 잠시 쉬다가, ‘그래 아직 한시 이전이니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만 천천히 가보자’고 결심을 하고 천천히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먼저 보낸 세 명의 뒷모습을 멀리서나마 계속 보고 쫓아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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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결국 중청대피소가 눈앞에 보이고 감격스러웠다. 아 결국 해낼 수 있는 거야, 이제 다리도 아프지 않은 듯 산행은 계속되었다.
중청대피소 역시 뜨거운 물이 제공되지 않았고 우리는 대피소 취사장에서 라면 끓이는 사람들을 쳐다만 보다가 어떤 분께 ‘선생님 저희가 컵라면 밖에 안가지고 와서요. 선생님 라면 드시고 나면 물만 좀 끓여주시면 안될까요?’ 부탁을 드렸고 그분은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그러셔서 다들 멀뚱히 서있는데, 산행을 홀로오신 분(이후 ‘그분’이라 칭하겠음. 이분 나중에 계속 등장함)께서 흔쾌히 물을 끓여 주시겠다고 하셔서 컵라면을 각자 하나씩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시선이 머문 곳은 뒤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 그 가족이 준비해온 밥에 계속 눈이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가족의 어머니께서 양파 김치와 열무김치를 가지고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셨고, 정말 감사했다. 원했던 밥이 빠졌지만 그게 어디인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식사 후 전열을 정비하고 대청봉에 올랐다. 바람이 분다. 정말 우리 모두를 날려버릴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이 분다. 그래도 즐겁다. 정상이다.
해발 1708 미터 정상을 새벽 6시부터 올라 6시간 만에 올라왔다. 내 첫 경험 대청봉이다.
(대청봉 정상에 서다)
그런데 한계령 코스 초반만 쉬웠지 이거 장난 아니다. 계속 바위와 돌, 어디가 길인지도 잘 모를 더구나 볼만한 경치도 없는 그런 하산 길을 어렵게 내려왔다.
그러다 길을 모르겠기에(왜냐하면 큰 바위 하나만 있어 바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던 중 아까 그분이 나타나셨다. 우리가 ‘이길 이 맞나요?’ 물었고 그분은 망설임없이 초행길이라고 하셨다. (아! 아까 그 전문가의 포스는 어디로)
그리고는 산악용 지팡이(폴)를 바위너머 땅으로 던지셨고, 그 지팡이 중 하나가 바위 옆 낭떠러지 비슷한 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순간 그분도 우리도 당황) 그리고는 바위 아래로 내려가셨다.
그리고는 계속되는 돌, 바위, 더구나 차 대리는 올라올 때는 정말 잘 올라왔건만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여서 하산하며 계속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한계령 하산 중)
‘우리가 한계령 길을 왜 선택했을까?’ 하는 후회도 되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문득 한계령으로 내려가면 설악동 까지는 또 어떻게 가나 고민이 되어 그분께 여쭈어 봤다. ‘한계령에서 속초 가는 차가 있습니까?’ 그분은 대구분으로 매년 2박3일 지리산 종주를 자녀분과 하신다고 하며 본인은 한계령에서 속초 들어가는 차를 타고 당일 대구로 돌아가실 거라고 했다. 차가 분명하게 있다고
한계령을 1Km 앞에 둔, 마지막 순간에 너무 힘들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119 부를까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 했다. 체력은 이미 고갈 상태고 4시간이면 내려간다는 산행은 이미 5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6시간을 내려와 한계령에 도착하니 5시40분경 장장 12시간의 산행이 마무리되었다. 성취감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도하고 결국 해냈다는 자신감에 약간 들떠서, 목마름을 게토레이 하나씩으로 해소하며 차편을 알아봤더니 저녁7시30분에 있단다. 큰일이다. (매일 저녁 7시 부터는 집회가 있다.)
택시를 알아보니 설악동 까지 5만원, 양양까지 약 2만 5천원, 오색까지 만 오천 원이란다. 우리가 가진 돈을 다 합해봐야 3만6천원. 갑자기 그분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분은 보이지 않았다.
설악동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으나 맥주한잔을 해서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 일단 택시를 불렀다. 설악동 가서 인출이라도 해서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
(오색 온천 족욕 체험장)
설악동에서 오색까지 와준 후배에게 고맙고, 저질 체력이었지만 12시간의 산행을 서로 응원해가면 마무리한 설 팀장, 강 과장, 차 대리 고맙고, 오늘의 산행에 추억을 더해주신 그분 오래 기억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대청봉의 바람과 내 자신이 그 정상에 섰다는 성취감 너야말로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 직장의 많은 일들이 개인들에게 다시는 동기부여가 된다거나 상식적으로 판단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자괴감 앞에 오늘의 산행은 나에게 어쩜 마지막 희망을 주었다.
된다. 아니 할 수 있다. 우린 동지요 동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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