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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사회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를 말하다’ 강연 후기

아버지가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아버지 세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사실 마흔이 넘어 까지 내 아버지의 이야기 내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오 남매 중 막내인 집사람과 처가에 가면 다섯 남매가 커온 다양한 이야기를 명절 때마다 반복해 듣습니다만 거기엔 웃음이 늘 함께 합니다. (물론 그 시절 가난하게 살던 이야기는 평범합니다만)

 

그런데, 우리 삼 남매는 함께 공유할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은 성격의 차이인지 처가와는 틀리게 별로 생각나는 일이 많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이런 형평이니 더구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는 비교적 형편이 좋았던 어머니 집에서(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큰 외삼촌(신문기자로 종군기자, 현재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으심)이 친정 아버지 같던)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된 후 아버지가 얻은 신혼 방을 보러 오신 큰 외삼촌이 이거 뭐~, 장농 들어갈 곳도 없구먼 하시며 자리를 뜨셔서 저희 할머니께서 당황하셨다는 이야기 정도가 기억납니다.

 

지난 몇 주간 무리를 했는지 입안이 온통 터지는 구내 염으로 컨디션은 엉망이지만, 오늘 박재동님의 강연이 아버지이야기 였기네 상암동으로 왔습니다. 예정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어록을 몇 가지 정리해 봅니다.

 

1. 우리 시대의 꿈은 무엇인가?

증조부 시대의 꿈은 화전민이었던 증조부가 땅을 갖는 것이었다.  머슴이었다가 동경에 가 부두노동자였던 할아버지의 꿈은 땅을 사서 제대로 자기 땅에서 농사 짓기였다. 아버지는 교사 이셨다가 몸이 망가져(좌절감) 꿈이 사라진 분으로 아버지의 꿈을 건강한 자식들이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었다.

 

2. 가훈 자기 삶은 자기가 알아서(생각 하는 삶)

- 박재동 님은 아들, 딸 하나씩을 두고 있으시다고, 잔소리를 본인이 듣기 싫어하기에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것이 가풍이다.

-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 살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요리를 시킨 것이다.

- 조용히 해라, 학생이 그럴 수 있나 이런 말 하지 않는다. 때리지 않는다.

- 공부해라 해서 할 것 같으면 세상에 공부 못하는 사람 없다. (괜히 기분만 나쁘다.)

- 내방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정리해라 소리도 못한다.

 

3. 옛말 자식이 16살이 되면 친구로 대하라

- 자식에게 기대를 걸지 말고 나 스스로에게 걸어라 (내 꿈을 이루고 자식들의 꿈을 이뤄야 같이 살아가는 동료가 된다.)

- (자식 포함) 인생이 내 전생보다 조금 더 발전하는 삶이 였기를 바란다.

 

4. 예술은 위대하다.

- 당장 돈이 되지 않으나 거기에 열정을 넣을 수 있는 순수함이 있어서 예술은 위대한 것이다.

- 당장 돈이 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할 뿐 위대한 일이 아니다.

- 예술가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는 것과 같다.

 

5. 내가 죽을 때

- 해서 실패하는 것이 안 하는 것 보다 낫다.

 

이 밖에도 자식교육 이란 (부모) 기대의 좌절된 역사다. 치유상담이란 내 안의 아픔을 토해내서 내 아픔과 화해 하는 것 등 담담하게 말씀하신 아버지의 이야기, 자녀들의 이야기 그리고 초등학교 때 직접 그린 그림 등을 보관하고 있으신 이야기(과자 봉지 하나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꼬깃꼬깃 보관하고 있으시다가 모아 놓으신다는) 등 조용한 듯 수줍은 듯 강연은 그렇게 (잔잔한 감동을 주며)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출판하신 아버지의 일기장이란 책에 직접 제 얼굴을 드로잉 해주신 것은 너무도 감사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좋은 시간 마련해주신 박재동님과 오마이뉴스에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