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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가족

축구 하는 아들에게 쓰는 편지(2)

우진아 아빠가 축구와 관련되어 너에게 쓰는 편지2번째로 일종의 자기 최면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고, 다짐해 보기 위한 일이다. 

먼저 이제 초3, 우진이가 있는 팀은 대회를 많이 나가는 팀은 아니지만, (아빠를 포함해서) 부모님들은 대회에 대한 갈망들이 항상 있는 것 같아, 아빠도 우진이나 우혁이의 대회가 잡히면 혹시나 그때 회사에 바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단다. 생각지도 못한 메르스 여파로 대회가 줄줄이 연기되다 보니, 8월 이 더위에 3주 연속,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아빠가 생각할 때 너희 팀은 아마도 초등 3학년 팀 중 에 전국에서라도 넘버1~3위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너희 팀이 보여준 결과가 그랬다. 올 첫 대회인 김포 금쌀배에서 예선에서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손쉽게 우승했고 이번 대전 대회는 전/후반 각각 15분 총 30분을 뛰는 긴 경기시간이 보장되어서 12~15분 경기라면 선취 골을 먹고 우왕좌왕 하다가 맥없이 경기가 끝나버리는 일이 없어서 예상대로 너희 팀은 우승을 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 관리되지 않은 잔디에도 불구하고 10명이 180여분을 나누어 뛰면서 얻은 값진 결과였다. 그리고 지난주, 밤낮으로는 서늘해졌던데 낮에는 여전히 무척이나 더운 날, 이번에는 목동에서 15분 단판 승부로 역시 결승까지 6경기를 뛰어야 했지, 많지도 않은 10명인데, 한 친구가 개인 일정을 이유로 갑자기 못 오면서 달랑 9명, 무언가 불안하게 시작한 대회였다. 

발가락에 손목에 조금씩 잔 부상을 가진 너희들은 한 경기 한 경기 정말 열심히 뛰더라, 짧은 경기 시간에 선취 골을 먹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멋진 패스플레이를 선보이며 뒤집기도 하고 잘 따라가서 비기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면서 역시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고 3주연 속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승전 15분은 무승부로 끝나고 연장도 없이 바로 승부차기, 양팀의 키커들이 단 한번의 실 축도 없이 4:5인 상황에서 네가 마지막 키커로 나서는데 아빠는 불안하기만 했다. 

엄청난 압박감, 네 부담감이 아빠에게 전해져 오는 순간, 넌, 실 축을 하고 머리를 싸매고, 통곡을 하더라, 아빠도 울음을 삼켰다, 몇몇 친구들도 울고 있더라, 너무도 미안했고, 팀에 죄송했고, 상처받은 너에게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일단 다가가 안아주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데리고가 세수 시키고, 머리에 물을 흠뻑 적셔주고는 그냥 또 안아주었지, 살다 보면 이렇게 울고 싶은 날이 또 오게 될 꺼야, 잘 이겨내야 한단다.

전 경기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며 다시 보니 결승전 때 너희 팀은(상대팀도 마찬가지 이지만) 진심을 다해 뛰고 있더라, 어떤 친구는 다리를 조금씩 절면서도 뛰고 있더라, 영상을 보며 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가끔씩 운동을 하고, 부모님들과 맥주라도 한잔 하는 날, 내셔널리그라도 가서 축구를 하겠다는 이제 초등학생인 네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부모님은 ‘EPL도 아니고 연봉 2천도 안 되는 축구 선수를 시킬 것이냐?’ 라고 묻곤 한다. 물론 모든 부모들의 눈에 자기 자식은 국가대표가 될 것이고, 유명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아빠는 전혀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 이겠지만, 꿈이 없는 사회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나라에서, 네가 축구선수가 되어도 좋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지만,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얼마 전 출근을 하는데, 어떤 팟케스트에서 대학을 막 졸업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왔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아르바이트 3~4개를 하면 한 달에 120여 만원을 번다고 하더라(아직 이런 돈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는 네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설명은 생략 할게), 그런데 월세로 60만원을 내고 나면 60만원이 남는데, 이 돈으로 한 달을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야, 아빠 생각에는 정말 힘들 거 같아. 그런데 아빠가 또 울컥한 부분은 그 젊은 친구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해, 그래서 감자 두 개를 양은 냄비에 고추장과 라면 수프를 넣고 끓이니 맛은 고기 맛은 아니어도, 감자의 식 감이 고기를 씹는 것 같아서 좋았단다. 그 후로는 가끔 그렇게 음식을 해 먹으며 그 요리의 이름을 ‘거지 탕’이라고 붙였다는데, 눈물이 나더라, 불과 아빠보다 20살 정도 어린 친구들이고, 그 친구들보다 네가 15살은 더 어릴 것 같은데, 너희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처럼 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구나!

아무쪼록 실 축의 공포를 담대하게 이겨내 주길 바란다. 혹시라도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갖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이 확인되면, 지금 것 배운 축구로, 세상에 나서보자, 독일이든 어디든, 비록 그곳이 5부 리그가 될 지라도, 거지 탕 같은 것 먹지 않아도 되는 그저, 재미있게 운동하고, 건강하게 살고, 움직인 만큼 벌고, 조금 더 공정한 사회로 나가보자. (다른 세상이 그렇다고 만만하지만은 않을 것을 잘 안다.) 아빠도 투표 같은 것 잘해서, 그렇게 나가 살지 않더라도 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 이제 이번 주 단웅배 대회를 마치면 또 다른 변화가 있겠지만, 우린 묵묵하게 조금 더 길게 보고, 조금 더 현명하고, 조금 더 묵직하고 당당하게 지금 해왔던 것처럼 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명확하게 보이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사람 냄세 나게 살다 보면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니? 

사랑한다. 우진, 우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