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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사회

새롭다는 것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 이렇게 살고 있어요가 1편이라면 이글은 2편입니다.



§          당신에게는 새롭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제 답 이외에도 당신의 대답도 듣고 싶은 날입니다. 그럼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 이야기 먼저 시작합니다.

§          저에게 새롭다는 것은 설렘 입니다. 이 설렘은 약간의 두려움과 섞여 있습니다. 중학교 때 새로 운동화를 사면 친구들이 그 신발이 더러워질 때까지 밟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건 이지매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 같은 것이었어요) 그렇게 더럽혀 지는 것이 싫어서였을까, 운동화를 며칠 동안은 신지 않고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어쩌면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것을 얻는 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너무 풍족하다면 새로움에 대한 감사 또한 적어질 것입니다. 또한 새로움은 기다림을 전재로 합니다. 기다림 끝에 얻을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승진 같은 것인데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한(할) 것이 승진이기 때문에 더 준비하고 기다리고 그래서 더 기쁜 것이 승진이 아닐까 합니다. (어제 같은 사무실에서 2분이 승진을 했습니다.)

§          무엇이 새로울까 생각해봅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주도에서 말고기를 처음 접했을 때, 중국에 가서 거북이 등 껍데기가 그대로 보이는 음식을 접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 저는 감히 숟가락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새롭다는 것에 흥미가 있으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두려워하는 것 이것도 모순일까요?

§          새롭다는 것은 도전 어쩌면 혁신 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선가는 ‘혁신’이 가장 좋은 단어가 되었다가 또 어느 순간 부 터는 ‘혁신’이 금칙어가 되어버린 나라에서 저는 어떤 통계보다 초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도전하고 혁신하려는 시도가 터부 시 되는, 그렇게 늙어버린 나라에 살고 있다는 증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얼마 전에는 아버지가 쓰시던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 드렸는데, 일주일도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예전의 휴대전화로 다시 물러와라 하셨습니다. (결국 다른 일반 휴대폰을 구입해 드렸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이 편한데, 아버지는 버튼을 꾹꾹 눌러쓰시던 정통적인 휴대폰에서 화면을 손으로 터치해야 하는 것에 적응하시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일반 휴대전화를 쓰시고 어머니께서는 휴대전화 자체가 없으십니다.(은행에서도 자동화기기를 이용하지 못하시기에 꼭 이용해야 할 경우는 청원경찰 분에게 부탁을 하신다고 합니다.)

§          저도 지금까지는 휴대폰을 길게 써봐야 약 6개월 정도 쓰면 바꾸는, 스마트폰과 IT 기기 등을 좋아해서 나름 얼리어답터 소리를 듣습니다만 이런 저도 제 6살 막내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저보다도 훨씬 높은 점수를 쉽게 얻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결국 저도 새로운 문화나 기계에 익숙하지 않을 때가 올 겁니다.

§          작은 다짐이 하나 있다면 그때가 되면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올 경우 제 아이들의 판단을 무조건 존중하(따르)려 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새로움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나이에 제 아이들이 저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갈 결정이라 저보다는 제 아이들의 선택을 더 존중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입니다.

§          저희 세대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식 세대가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각 세대와 지역별 성별 인구 구성비에 맞추어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 농민을 대표하고 노동자가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 국민에게 10% 표를 받았으면 10%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를 보고 싶습니다. 나이든 분들의 몰표로 젊은 사람들의 미래가 어두워 진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          세종 대왕은 위대한 왕이지만 2013년 지금에 세종이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까요? 강물은 저 꼭 때기에서 시작해서 바다로 갑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요, 바다에서 산으로 가는 강은 없습니다. 역 발상이 때론 위대한 발명을 만들어 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은 후 바로선 것이 틀렸다 할 수 는 없는 것처럼 새로움 앞에 낡음이 자리를 내줄 때 적어도 방해가 되지는 않는 존재가 저 자신이길 희망합니다.

§          경상도에서 네모가 전라도 가면 동그라미가 되는 세상이 아닌,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지 않아도 학습을 통해 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는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잣대가 바른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논물 표절로 A가 물러났으면 B가 표절했다는 것이 사실이면 물러나는 것이 상식인 나라였으면 합니다. 똑 같은 표절이라 할 때 힘있는 사람과 친한 B는 물러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추악한 교육이 강요될 것입니다.

§          저에게 새롭다는 것은 끝없는 배워야 하겠다는 동기가 됩니다. 그러나 언제 가는 그런 학습이 벅찰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새로운 물에 떠밀려 바다로 가는 옛 물이 된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면 그 사실이 슬프기 보다 기뻤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나이 40대에 새물이 30대라고 물러나라 하는 강제 배기 시스템의 적용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2013.04.03 으뜸벗(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