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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후기] 오원근 변호사 ‘버릴수록 행복한 삶’ 강연 후기 새로 꾸며진 광흥창(6호선) 인근의 노무현 재단 사무실이 이전한 첫날, 오늘 강연은 검사를 그만두시고 청주에서 변호사를 하시면서 생태 농업을 하는 농부라고 불리는 것이 더 듣기 좋다는 오원근 변호사의 강연에 참석하였습니다. 먼저 새로 꾸며진 재단 사무실은 지하철역 인근을 최우선 적으로 고려한듯한 위치에 깔끔한 모습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몇 차례 이전이다 보니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원근 변호사님은 제가 업무 차 만나본 다른 법조계 분들 같지 않게 소탈한 모습이셨습니다. 그럼 그분의 강연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약 100여 평의 생태농업을 하고 있어 농부로 불렸으면 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에 검사를 그만두고 서울 생태 귀농학..
어린이 패션쇼 (우진 출연) 우진이가 아마도 우혁(6살)이 만 할때 인듯
창조란 이런것 울 아들 우진(8살) 어록 - 엄마는 회사 워크샵가고, 아빠랑 아이둘만 남았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하고 음료수를 하나씩 골라 목을 축이는데 먹돌이 우혁이는 금방 다마셔 버리고 형 2%를 시시탐탐 노리고 있다.운동 후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는데, 우혁 형의 2%음료가 남아있는 병에 물섞는 시늉을 한다. (본인도 적게 남은 음료를 마시기는 미안하니 양을 늘린다음에 먹으려는 생각이었겠지)내가 장난치지 말라고 나무라자우진 왈 "1%로 먹게그냥 두세요"역시 형아(2% 음료에 가 남아있는 것에 물이섞이니 1%가 된다는 뜻)답게 맘도 넓다. ㅋㅋ
Future of FC Seoul 장우진 축구성장기(2013.05.05) 우진이가 나날이 커갑니다. 이날은 3:1로 우진팀 승리, 장우진 2골
자화상 자 화 상 - 2013.05.06 으뜸벗(장재훈) 좋은 아빠라면서 아이들에게 소리도 질러 어린이날 잔뜩 선물을 안기고는, 그 다음날 학원가라 말을 해 부부가 함께 운동하는 걸 부러워하다가도 약속을 안 지키는 집사람을 닥 달해 같이 할 생각을 빼앗아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무뚝뚝함에 반감이 많으면서 아버지의 행동을 부지불식간에 가장 많이 따라 하고 있어 책 읽는 걸 좋아한다면서 사들인 책의 겨우 반만 다 읽곤 벽면 하나 가득 책장이 넘쳐나는 책을 보면서 더 큰 걸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해 글 쓰는 게 그냥 좋아서 하는 거라며 남은 의식도 안 한다면서 게시판 댓 글 수와 반응에 신경을 쓰고 있어 떳떳한 1%를 희망하며 당당한 99%로 살겠다면서 아직 월 10만원도 안 되는 기부금이 벌써 부담스러워 스마트 폰 데이..
우진 첫번째 운동회 2013.05.01 백마초등학교 운동회
내가 바라는 것 어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남동생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아렸습니다. “형, 나 집 팔렸어”, “어, 그래 얼마에” “2억 7천 5백”, “얼마 주고 샀었지?” (눈물 꾹꾹 참고 있는 목소리) “3억 2천”, “그래 (그래도) 잘 정리한 것 같다.” “어, 그냥 집 팔렸다고” 저는 밤새도록 잠을 쉽게 못 들고, 뒤척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2남 1녀의 장남으로 때로는 과도한 무게 감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쩌면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과 혜택을 자라는 동안 제가 독차지 한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남동생은 1973년 생입니다. 공업고등학교 전기 과를 나와 졸업하자 마자 취업을 하고 군대도 병역특례로 마치고, 중간에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 지금 40이 되기까지 그는 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 4..
어디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에 사시나요? 저는 지금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 삽니다. 여러분도 대부분 아파트에 사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단독주택에 살다 처음 아파트로 이사간 것은 1997년 이었고 그 이후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파트는 도시생활을 할 경우 우리 거주 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사간 아파트의 평수가 32평 정도 되었는데 이상했던 것은 등기부 등본상 토지 지분이 약 11평 정도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이해했지만, 그때는 ‘저희 가족이 지불한 돈 보다 땅을 적게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나머지 땅은 어디로 간 거지?’ 하는 생각) 결혼 후 부모님을 모시고 1년을 함께 살다가 전세로 분가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2002년경..